쿤달리니와 명상: 전체성에 대한 자각.


문화센터

명상이 

아무리 

마음의 문제라고 

역설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집중은 

바로 

나디의 집중이며, 

마음의 이완은 

곧바로 

나디의 자유로운 

소통이기에,

나디에 대한 

실제적 체험은 

명상의 바른 실천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



쿤달리니 요가 수련을 통한 삼매의 체험 과정


1. 복부에 뜨거운 열기(소화의 불)가 일어나

2. 온몸의 나디가 열리기 시작하고

3. 복부 좌우의 충맥이 확연하게 드러나면서, 수슘나의 입구를 열고,

4. 좌우맥은 전면의 모든 cakra로 융합되어 몸의 중심으로 몰입된다.

5. 복부에 충만한 精氣와 함께 체내의 모든 쁘라나가 수슘나로 몰입되어,

6. 뇌부 중심(송과체)에 이른 그 기운에 의해 마음이 그곳에 집중되면,

   미간에서 영롱한 빛이 일어나며,

7. 이 빛이 지속되어 원만하게 방사되면서 무아의 상태에 이르는데.

8. 그때는 오로지 ananda(환희)의 상태로 순수의식(cit)만이 존재한다(sat).



모든 영적 수행의 이정표와 같은 쿤달리니는 생리학적 영적 수행 원리의 진수다. 수행과정의 단계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요가 전통의 귀중한 유산이다. 특히 다양하게 알려지고 있는 난해한 명상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원리를 통찰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원리다. 


전체성의 자각으로서 쿤달리니


쿤달리니는 그 자체로 전체성, 합일의식의 실현이다. 정통 쿤달리니요가 수련을 통해 다양한 명상수행의 통합원리를 터득하고, 종교적 수행의 보편적인 생리학적 원리를 이해하여, 영적 수행의 바른 길을 알 수 있다. 


또한 생명에너지의 비의적인 가르침에 다가갈 수 있으며, 그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조절하게 되면 타인을 치유하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


우리 몸은 가장 쉽게 인지 가능한 전체성의 가장 확실한 단위다. 그래서 그것을 소우주라고도 하니, 쿤달리니는 정신과 물질이 융합된 사이코소마틱(Psychosomatic) 존재다. 그것은 소우주로서 몸이 하나의 전체성을 이루고 있다는 직접적인 자각을 통해서 분리된 개체를 전체성으로 안내한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하나로 이어진 생명에너지의 흐름이 동시에 하나로 움직이는 순간 우리는 전체성을 체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쿤달리니 각성의 진정한 의미를 자각하게 된다. 몸이 부분들로 나뉘어 인식되지 않고 하나의 진동으로 울리는 찰라찰라를 알아차리는 것이 진정한 알아차림이다.  


하타요가쁘라디삐까에서 모든 나디의 근원은 하복부의 깐다라고 하며, 우빠니샤드에서는 가슴 중심이라고 한다. 또한 아래를 향한 천개의 연꽃잎인 정수리의 사하스라라짜끄라는 전체성 자체를 의미한다. 이들은 모두 쿤달리니의 모습이기도 한다. 세 곳은 각기 다른 의식의 층위를 대표하기도 하며, 모두 나디(경맥)의 전체성이 발현되는 곳들이다. 


하복부에서 일어나는 진동만으로 꾼달리니 각성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그런 경지에 나는 언제나 이를 수 있나!' 하고 선망하기도 하는데, 전체성에 대한 자각을 동반하지 않는 꾼달리니는 자만심만 키운다.


쿤달리니나 단전호흡이 부작용과 자주 함께 언급되는데, 전체성에 대한 자각이 없는 꾼달리니 수련이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다.


쿤달리니의 내밀한 생리학적 원리도 중요하고, 경전을 따르는 고유의 수련법도 엄밀하게 접근해야 하지만, 전체성으로서 인격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그 에너지는 스스로를 과대하게 포장하는 도구일 뿐이다. 신비한 능력이나 신비적인 체험만을 추구하는 경우는 쿤달리니의 알 속에서 자만심이 부화하고 있는 것이다.

 

쿤달리니는 그 자체로 전체성의 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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