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6-24 13:51
기억이 '나'다.
 글쓴이 : 수돌
조회 : 389  
 
'내가 기억하는 것'''.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내 의식에 없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설령 외부에 존재한다고 할 지라도

그것은 나에게 비존재다.
 
오감의 자극으로부터 내면에서 느끼고 인식하는 일체는

저장식으로서 기억에 의해 좌우된다.
 
기억은 저장된 것으로서 아뢰야식이다.

저장식(貯藏識)으로서 기억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어왔던 과거의 생각과 행동의 습성(習性)이다.



기억의 본질은 현재의 인식에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억의 재생만이 삶이 되어버린 자에게 새로운 인식이란 없다.

그에게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기억일 뿐, 기억의 씨앗들이 느끼고 생각한다.

그 생각들을 ''라고 할 뿐이다.

그럴 때 내가 산다고 할 수 없고, ''는 기억일 뿐이다.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 일부만을 인식한다.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 일부만을 떠올린다.


 
''라는 인식이 사라지면 참된 실재가 드러난다.

기억이 '나'인 삶은 새롭지 않다.

기억을 상실한 사람에게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기억이 인가

자신이 누군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는 가 없는 것인가


* 《靈樞。本神篇》에 '心有所憶者 謂之意'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처음 맛본 음식을 점심에 기억하여 다시 그것을 먹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그것을 취하고자 하는 일종의 애착이 결부된 것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고 하는 모든 것과 관련된다.

* 기억은 빨리어로 사띠(sati), 산스끄리뜨로 smṛti이며, 한문으로 念이라고 번역한다.

* 장식(藏識, 아알라야 비즈냐냐(ālaya vijñāna) : 싼스끄리뜨 음을 따라 아뢰야식이라고 한다.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팔식의 하나. 7식이 기억하고 담아 두었던 것을 언제라도 필요하면 기억해내고 습관 반사적으로 바로 바로 쓸 수 있게 작용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 의식. 유식설에 있어서는 아뢰야식은 망식(妄識)인데, 여래장설에서는 진여(眞如)와 무명(無明)이 결합된 것으로서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다. 진망화합식은 청정한 정식과 물든 염오식이 화합해서 하나가 된 식이다.

*팔식(八識): 식(識) 중에 제일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인데, 이것은 가장 바깥에 나타난 거친 식이며, 맨 앞에 나와 있다고 해서 이른바 전5식(前五識)이라고 한다. 이 전5식을 총괄하는 식이 의식(意識)인데, 이것이 6번째에 있으므로 제6식(第六識)이라고도 한다. 이 제6식의 근간이 되는 식이 다름아닌, 아의식(我意識)이 강한 자아의식으로 제7식(第七識)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산스크리트로 ‘마나스’이며 한문으로 말나식(末那識)이라고 표기한다. 그리고 8번째의 제8식은 나타나 있지 않고 밑바닥에 숨겨져 있는 하나의 잠재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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