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1-01 18:28
자신의 생각이 자신을 지배합니다. 내 생각에 대한 생각이 필요합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626  

믿음은 종교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한 방법입니다.

믿음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신앙으로서 초월적 대상에 대한 믿음은 분명히 고통을 해소하는 중요한 종교적 실천이어 왔습니다. 

너무나 숭고한 실천입니다.

그러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때, 신앙과 과학이 서로 대립했으며, 

신앙은 맹신으로 변질되었었죠! 

이 잘못된 우주관은 종교적 폭압과 함께 16세기까지 널리 인정되었습니다.

지고하고 순수한 신앙이 신앙 이외의 영역을 지배하려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죠! 

어쩌면 '신앙'을 '믿음'과 혼동하는데서 이러한 오류가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신앙은 '믿음'이라고 하기보다는 '헌신'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초월적 대상에 대한 지식, 또는 믿음이나 확신이 아니라 '헌신' 그자체일 것입니다. 

신앙, 아니 헌신은 그 자체만으로 완전히 충족되는 것이기에, 그 이외의 것이 필요없는 숭고한 것입니다.


헌신 이외의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 곧 헌신이겠지요!


신앙(헌신)에 그 이외의 논리적인 탐구나 과학적인 영역을 결속시키려는 태도로 인해 인간은 피폐하게 되죠!

그 반대의 경우도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학이 헌신으로서의 신앙(헌신)을 검증하려해서도 안되겠죠!

초월적 존재에 대한 증명은 과학의 역할이 아닙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한 믿음이 신앙(헌신)일까요? 지식에 대해 맹신하게 될 때, 

그것은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한 믿음은 헌신이 아니겠죠! 

헌신은 앎(지식)과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숭고합니다. 

믿음은 믿는 대상을 전제로 하지만 헌신은 대상화 할 수 없는 초월적인 어떤 것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겠죠! 

"'---것'에 자신을 바친다"고 하는 말 조차 없는 것이 헌신일 것입니다. 

초월적인 '---것'은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을테니까요!


초월적인 것에 대한 헌신은 그것에 대한 앎(지식)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무한하고 어느 곳에나 편재하는 초월적인 신을 증명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신앙(헌신)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대상화할 수 없는 것(초월적인 그것)을 대상으로 신앙(헌신)한다는 것은 자체로 비논리적이죠! 

"대상화할 수 없는 것(초월적인 그것)을 대상으로 신앙(헌신)한다는 것은 자체로 비논리적이죠"라고 하는 논리적인 방식으로도 신앙(헌신)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논리적인 문제를 초월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동일시할 때 지혜의 빛은 어두워집니다.

숭고한 신앙(헌신)과 유사한 '믿음'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죠! 

헌신은 앎(지식)과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숭고하지만, 

신앙(헌신)이 믿음의 방식으로 실천될 때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됩니다.

'사실'은 '믿음'과 동일할까요? 심리적인 믿음은 사실에 대한 추구가 아닙니다. 

사실이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죠! 

사실은 사실 자체로 '현재 직접 지각'될 때 비로서 사실로서 우리 인식에 드러납니다.


뭔가를 믿는다는 것은 '현재' 사실이냐 아니냐와 반드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죠! 

왜냐하면 '이미' 믿고있기 때문입니다. 


요가수련도 믿음에 의지해야할까요?

요가수련은 '지금 자각하는 것', 즉 현량,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바라보면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과거완료형이지만, 요가수련은 현재진행형이죠!


적어도 호흡을 방편으로 삼는 모든 수행에서 호흡은 생명력을 움직이는 氣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요가에서는 쁘라나라고 하죠! 그렇게 호흡을 관찰하건(수식관, 아나빠나사띠) 숨을 마시고 멈추건(꿈바까) 호흡을 방편으로 삼는 모든 수련은 그 에너지의 흐름을 관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흐름, 즉 나디 또는 경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존재에 대해서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 많은 나디 중에 이다,삥갈라 수슘나가 중요하기 때문에, 임독맥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몇개 나디(경맥)만을 생각한다면 과연 아사나와 호흡수련에서 작용하는 나디들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임독맥, 수슘나만 생각하는 마음은 이미 생각이 아니라 맹신이 되어버리겠죠! 

궁극적 경지만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맹신이 되어버리겠죠!

자신의 생각이 자신을 지배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죠! 

자신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순차적으로 생각을 전개하다보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에 쉽게 접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생각에 대한 생각이 필요합니다.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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