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1-04 12:05
아사나의 성취는 난이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 : 수돌
조회 : 608  


난이도 높은 어려운 동작이 
요가수련에 있어서 높은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요가를 배우려면 체조선수들이나 무용가들에게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르리라!

어려서부터 난이도를 높여가면서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을 연습해온 전문가들은 체조나 무용을 전공하신 분들이다.
그들이 고난이도의 동작을 잘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요가수행자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적인 동작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정하다 보면, 서커스 단원들은 대단한 요기라고 할 수 있겠지!

동작의 완성도라는 것이 진정 있기나 한 걸까?
예를 들면, 등펴기 체위(Paścimatānāsana)의 완성된 자세는 어떤 것일까?

모든 동작에는 그 동작의 완결된 형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물론 그렇다고 지도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또 애초에 그렇게 배웠다면,
당연히 완성된 자세가 될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할 것이다.

한국에도 수많은 요가협회가 있고, 요가의 본고장이라는 인도는 물론 
각 나라마다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요가 협회가 있니다. 
그들 중 몇 곳을 방문해 보면 지도하는 선생님에 따라 동작이 다르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시퀀스니 하는 유형으로 동작의 흐름을 따라 연결시켜서 지도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천차만별이라!!

과연 어떤 게 맞는 걸까? 

외적인 조건에 자신을 맞추는 연습을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요가의 길이라면, 진정 그것이 요가일까?
      
어려운 동작을 잘하는 분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왜 아름다운 걸까? 

만일 모든 사람들이 그런 동작을 할 수 있다면,
동작의 난이도로 요가의 성취를 결정하거나, 그 동작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등펴기 체위(Paścimatānāsana)는 어떤 동작이 완성된 자세이냐?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그 아사나를 요가수행자가 왜 할 수 밖에 없었냐?가 진정한 요가적 질문이리라!!
그 아사나를 통해서 얻고자했던 것은 무엇일까?
정통 요가생리학을 통해서 생명에너지의 원리를 터득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머리는 어떤 각도, 발가락은 어떤 방향으로, 손목과 어깨는 어떤 모양으로 해야 된다는 
그러한 규정이 왜 필요한 걸까? 
물론 신체 부분부분에 세심한 배려는 그만큼 섬세한 관찰을 가능하게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러한 규정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지금 이순간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아사나는 뭘까?
나는 지금 어떤 신체적 괴로움이 있는 걸까?
괴로움 자체가 없다면 요가를 할 필요가 없다!

어떤 동작을 마스터하고 싶어한다면,
'왜 나는 그러한 동작을 하고 싶어하는 거지?'하고
스스로에게 한 번쯤은 말을 걸어볼 필요가 있다.

내가 그 동작을 당장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왜 그것을 하려는 걸까?
'나는 왜 힘들게 어려운 동작을 하고 싶어할까?

높은 산을 오른 뒤 내려다보는 어떤 성취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가 어떤 동작(아사나)을 한다면 그 동작을 하게 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어떤 동작을 반복한다는 건 정신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동기없이 하는 행위는 '나도 모르고 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하는 행위, 특히 고난이도의 동작 연습처럼 반복하는 행위는 모두 분명한 나의 의도가 있는 거라!
그 의도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

어떤 아사나를 하건 그 아사나를 한다는 것은 나의 의도가 있으며,
그 의도에는 그렇게 하도록 한 어떤 동기가 있다.

그 동기가 무엇일까???

나로 하여금 그렇게 어려운 동작들을 반복하도록 하는 그 동기가 무엇일까?

정통 요가생리학에서건 동양의학에서건 서양의 연금술적 전통에서도 
우리 몸은 좌우가 동일하지 않다. 

물론 지금까지 좌우가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말은 
아주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기본적인 원리 조차 간과하고서는 아사나를
터득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좌우 코를 이용한 요가의 호흡수련 자체가 불가능하다.

좌우 몸이 대칭이라고 생각한다면, 좌우 동작을 동일하게 할 것이다!
요가 생리학적 원리를 이해하면 그러한 관념들은 사라지게 된다.

요가 생리학은 아사나들마다 동작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근골격에 기반한 물질적인 육체 관념을 지우고 
생명에너지로서 자신의 존재를 재정립(reset)하는 것이다. 

허리는 꼬리뼈와 어떤 각으로 유지하고 흉추에서 경추까지 일직선으로 펴야된다거나 
양팔이 벌려진 각은 어떠해야 되며, 팔꿈치는 어데 두어야 한다는 등, 또는 마음을 어떤 부위에 집중하면서 
시선은 어데를 보라는 등의 규정들을 익히기 위해서,
또는 어쩌면 어려운 동작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 때문에, 
우리는 내몸이 지금도 말하고 있는 고통에 귀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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